메이지 시대 나가사키에서 중국인 유학생이 소박한 짬뽕을 먹는 모습을 상상한 재현 이미지

수요일|나가사키를 따라가다

나가사키 짬뽕

나가사키 짬뽕은 왜 탄생했을까? 항구 도시와 유학생을 위한 한 그릇

짬뽕의 시작을 따라가면 화려한 명물보다 먼저, 나가사키에서 지내는 젊은이에게 따뜻한 식사를 주려 했던 이야기가 보입니다.

메이지 시대 나가사키에서 중국인 유학생이 소박한 짬뽕을 먹는 모습을 상상한 재현 이미지
자료의 기록을 바탕으로 1899년 무렵 나가사키 유학생에게 제공된 한 그릇을 상상해 재현한 이미지입니다. 창업 당시의 실제 사진은 아닙니다.

1899년, 나가사키의 중국 음식점에서

나가사키시는 짬뽕이 1899년 나가사키에서 탄생했다고 소개합니다. 고안자는 중국 푸젠성 출신으로 중국 음식점 시카이로를 창업한 천핑순으로 전해집니다.

당시 나가사키에서 공부하던 중국인 유학생에게 저렴하고 영양가 있으며 배부른 음식을 먹이고 싶다는 마음에서 채소와 고기를 볶고 중국식 면과 국물을 함께 끓인 한 그릇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1899년의 일본은 어떤 시대였을까?

1899년은 일본의 메이지 32년으로, 막부 말기 개항에서 약 40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일본이 근대 국가의 제도를 갖춰 가며 국경을 넘는 사람과 물자의 이동도 늘어나던 시기입니다. 나가사키에서는 에도 시대부터 이어진 중국과의 관계 위에 개항 후 외국인 거류지를 통한 새로운 교류가 겹쳐 있었습니다.

그해 7월에는 나가사키를 포함한 개항장의 외국인 거류지 제도가 끝나 외국인이 일본 국내에서 거주하고 이동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한편 청일전쟁이 끝난 지는 불과 4년이었고, 나가사키 화교 사회는 전시 귀국 이후 인구가 다시 회복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나라 사이의 긴장과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한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는 일상이 나란히 있던 시대였습니다. 그 속에서 고향을 떠나 공부하던 젊은이를 위해 태어난 한 그릇이라고 생각하면 짬뽕의 온기가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나가사키였기에 만날 수 있었던 것

항구를 통해 해외와 교류해 온 나가사키에는 중국 문화와 음식이 뿌리내릴 토양이 있었습니다. 나가사키시 자료에 따르면 시카이로의 창업지는 옛 중국인 거주지 근처였습니다.

짬뽕은 중국 요리를 그대로 옮긴 음식이 아닙니다. 푸젠의 탕면, 나가사키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 유학생의 생활을 걱정한 주인의 생각이 만나 탄생한 음식으로 보면 그 모습이 선명해집니다.

한 냄비에서 면과 재료를 완성하다

짬뽕의 큰 특징은 면을 따로 삶아 국물에 옮기는 방식뿐 아니라 볶은 재료, 국물, 면을 같은 팬에서 완성한다는 점입니다. 채소와 고기, 해산물 맛이 국물에 배고 면이 그 국물을 받아들입니다.

한 번에 여러 재료를 먹을 수 있는 실용성과 냄비 안에서 맛이 하나가 되는 매력은 유학생을 위한 식사가 나가사키의 대표 향토 음식으로 퍼진 이유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이름의 유래를 하나로 단정하지 않기

‘짬뽕’이라는 이름에는 중국어 ‘먹다’에서 왔다는 설과 포르투갈어에서 왔다는 설 등 여러 설명이 있습니다. 나가사키시도 여러 설이 있다고 소개합니다.

근거가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어느 한 설명만 사실로 볼 수 없습니다. 확인 가능한 자료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나누어 읽으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까지 포함해 음식 문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가사키 짬뽕의 출발점에는 문화 교류뿐 아니라 나가사키에서 공부하는 젊은이에게 든든한 식사를 주고 싶었던 일상의 배려가 있었습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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